칼 세이건
Carl Sagan
- 출생
- 1934년 11월 9일 17:05
- 출생지
- 미국 뉴욕주 뉴욕 (40n43, 74w0)
- 일간
- 甲木
- 없는 것
- 火(식상) 부재
- 공망
- (박완규 대표 직접 입력)
명조 구조
일간은 甲木이다. 곧게 뻗는 나무의 기운이다. 방향이 있고, 성장을 향하고, 빛을 향해 뻗어나간다. 굽히기보다 부러지는 방식을 택하는 에너지다.
오행 분포를 보면 木이 셋(甲·乙·甲), 金이 둘(酉·申), 水가 둘(癸·亥), 土가 하나(戌)다. 火가 없다.
신강·신약을 보면 신강이다. 비겁(木)이 셋이고 인성(水)이 둘이다. 일간을 강하게 만드는 세력이 다섯 자리다. 반면 관성(金)이 둘, 재성(土)이 하나로 일간을 소모시키는 세력이 셋이다. 신강하다.
없는 것 관점
火(식상)의 완전한 부재
甲木에게 火는 식상이다. 식상은 자신의 에너지를 자유롭게 표현하고 흘려보내는 힘이다. 이것이 명조에 없다. 식상이 없다는 것은 표현하고 싶은데 그 에너지가 구조적으로 없다는 뜻이다. 역설적으로 이것이 집착이 됐을 수 있다. 없는 것이 가장 강하게 끌어당긴다. 세이건이 평생 과학을 대중에게 설명하는 일에 집착한 것이 이 식상 부재의 구조에서 나온 방향이었을 것이다. 없기 때문에 그 방향으로 끌렸고, 그 끌림이 5억 명을 감동시킨 코스모스가 됐다.
세이건 명조의 핵심은 비겁(木) 셋과 인성(水) 둘의 강한 조합, 그리고 식상(火) 완전 부재다.
비겁이 셋이라는 것은 자기 방향이 강하고 외부의 비판에 흔들리지 않는다는 뜻이다. 학계의 거부와 비판이 세이건의 방향을 바꾸지 못한 것이 이 비겁 과다 구조의 자연스러운 반응이었을 것이다.
인성이 둘이라는 것은 배우고 흡수하는 에너지가 강하다는 뜻이다. 세이건이 천문학에 국한되지 않고 다양한 분야를 흡수한 것이 이 인성의 에너지였을 것이다. 인성이 강한 사람은 경계를 넘어 흡수하는 것이 본능이다.
식상이 없다는 것이 역설적으로 가장 강한 동력이 됐을 수 있다. 없기 때문에 집착이 됐고, 그 집착이 방향이 됐고, 그 방향이 5억 명을 감동시켰다. 없는 것이 나침반이 됐다.
코넬 대학교 교수. 외계 지적 생명체 탐사(SETI)를 주도했다. 이것은 당시 학계에서 비주류였다. 편관(申) 일지의 에너지가 일상의 도전으로 작동했을 것이다. 주류 학계의 비판이 일상적인 압박이었을 텐데, 신강한 구조는 그 압박에 방향을 바꾸지 않는다. 국립과학원 회원 거부. 너무 대중적이라는 이유였다. 이 거부가 세이건의 방향을 바꾸지 못했다. 겁재(乙) 월간의 강렬한 자기 에너지가 사회적 비판을 연료로 삼았을 것이다.
세이건은 보이저 1호와 2호에 실을 골든 레코드를 만들었다. 외계 문명이 발견할 경우를 대비한 지구의 명함이었다. 바흐를 넣었다. 고래 울음소리를 넣었다. 척 베리의 음악도 넣었다. 이 레코드는 지금도 성간 우주를 떠돌고 있다. 식상이 없는 구조가 만들어낸 집착이 이 작품에서 터졌다. 없는 것이 방향이 됐고, 그 방향이 인류를 넘어 우주로까지 닿은 것이었다. 1985년 소설 콘택트. 과학자가 소설을 썼다. 편인(亥) 월지의 비정통적 흡수 에너지가 경계를 넘은 것이었다.
세이건의 명조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식상이 없는 구조가 역사상 가장 탁월한 과학 소통가를 만들었다는 역설이다. 표현의 에너지가 없기 때문에 표현을 향한 집착이 생겼고, 그 집착이 5억 명을 감동시킨 코스모스가 됐다. 없는 것이 방향이 된다는 것을 세이건만큼 선명하게 보여주는 사례가 없다.
당신이 가장 부러워하는 능력이 있다면 그것이 명조에서 없는 것과 일치하는지 한 번 들여다볼 만하다. 부러움은 결핍의 신호가 아니라 방향의 신호일 수 있다. 세이건이 표현을 향해 평생 끌렸던 것처럼, 가장 갖고 싶은 것이 오히려 가장 강하게 끌리는 방향일 수 있다.
공망 관점
이 섹션은 박완규 대표 직접 작성 영역입니다.
(박완규 대표가 각 인물의 공망을 직접 계산해 작성하는 자리입니다.)